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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618호에 주의를 기울여 볼만한 기사가 하나 났네요. 바로 "[쟁점]영화 보려면 서명운동 필요한 세상?-메이저 배급시스템서 밀려난 <기담>, <리턴> 지키러 직접 나선 관객"이란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을 보강해서 정리해 보자면 요는 이런 겁니다.

2007년 여름 시즌 극장가가 전반기인 7월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스파이더맨 3>, <캐러비안의 해적 - 세상 끝에서>, <슈렉 3>, <트랜스포머>, <다이하드 4.0>,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등 - 이 스크린을 과다 점유하는 독과점 현상을 보이더니, 8월에는 <화려한 휴가>와 <디워> 같은 한국산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스크린을 과다 점유하는 독과점 현상을 보여 <기담>, <리턴> 같은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작은 영화들이 개봉 며칠만에 스크린이 축소되고 그나마 있는 스크린 조차 교차상영으로 밀려, 관객들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정당한 기회를 뺏기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직접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티즌 청원란 등을 활용해 상영을 보장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 '영화 소비자 운동'이라 불릴만한 움직임은 독과점 욕망에 사로잡힌 영화산업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이나 현재 영화 산업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같은 상업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거대상업영화/블록버스터에 밀려 온당한 상영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영화들이 있었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영화산업에 메이저 배급사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 영화 직접 배급이 가능하게 되었던 시절에도 거대 상업영화에 의해 작은 규모의 상업영화가 시장에서 밀려나곤 했습니다.

이런 불공정 경쟁 구도가 "할리우드 직배 블록버스터 영화 Vs. 한국 상업 영화"의 구도였던 시절에 절실했던 것이 바로 스크린쿼터제도였지요. 그러나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같은 수직계열화에 일정하게 성공한 한국산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등장한 이후 불공정 경쟁 구도는 변화하게 됩니다.

2004년 강제규필름 제작, 쇼박스 배급의 <태극기 휘날리며>, 2005년 진인사필름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의 <태풍>, 2006년 KnJ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한반도>, 그리고 2006년 청어람이 제작하고 쇼박스가 배급한 <괴물>이 전체 스크린의 30~40%에 달하는 스크린을 점유하면서 수직계열화에 성공한 메이저 배급사의 위력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이 때부터 시장의 불공정 경쟁 구도는 일정하게 "거대예산 블록버스터 영화 Vs. 중소규모 상업 영화"로 변화하였습니다.

자본의 무한 이익 증식이 유일무이한 목표가 된 영화 상영 시장에서 아무런 규제도 없다면 되는 영화에 올인하는 이런 스크린독과점 현상(혹은 독점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할 수 있는 정책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기사에 등장한 <기담>과 <리턴>의 사례는 스크린 독과점 논쟁의 희생양이 저예산영화/예술영화/독립영화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건강한 시장을 위해서는 1등에만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5등, 6등을 하는 영화들에게도 일정한 시장에서의 자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2006년 <괴물>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었을 때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은 시장에서 복합상영관의 과다한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관한 법률일부개정법률안을 2006년 11월 20일 발의한 바 있습니다. 이 법률안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를 주요 내용으로 합니다.


가. 복합상영관을 영화상영관 중 동일한 장소 내지 시설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일정한 수 이상의 상영관을 가진 영화상영관으로 정의함(안 제2조제11호의2 신설).

나. 문화다양성 확보를 위하여 현행 전용상영관을 대안상영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대통령이 정하는 복합상영관 경영자는 1개 이상의 상영관을 대안상영관으로 운영하도록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함(안 제38조).

다. 복합상영관 경영자는 복합상영관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영화 중 어느 하나의 영화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일정한 비율 이상을 점유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함(안 제38조의2 신설 등).


이 중 세번째가 바로 스크린 점유율 제한이라고 부르는 멀티플렉스의 독과점 규제 정책입니다. 발의는 되었으나 아직 개정으로 이어지진 못한 이 개정법률안은 몇 개의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현재의 상영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을만합니다.

좀 더 나가 이야기를 해보자면, 한 편의 영화가 일정한 비율 이상의 스크린을 점유할 수 있는 스크린 점유율 제한 역시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편의 영화의 점유율 한계를 30%로 설정한다면 3편의 30%영화의 시장 독과점을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2007년 현재 처럼 <디워>, <화려한 휴가>, 그리고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만남의 광장> 같은 몇 편의 영화가 스크린을 점유하는 현상을 제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시장 내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영화들의 장기 상영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상영 시장 정책이 고려될 필요가 있습니다. <괴물>의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한창이던 2006년 8월, "영화 산업의 상영 시장 독과점 욕망을 규제하라! - 한국 영화 상영 시장의 ‘문화 다양성’ 확보를 위한 제언"이라는 글을 통해 "상영 영화 쿼터제" 도입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상영 영화 쿼터제는 독과점 우려가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을 대상으로 일정한 비율 이상의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토록 하는 정책입니다. 이를테면 전체 시장 점유율이 일정 비율 이상인 멀티플렉스 체인이나 멀티플렉스 체인은 아니나 해당 지역 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멀티플렉스에 한 해 일정 비율 이상의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토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70%의 상영 영화 쿼터제를 도입한다면 10개의 스크린이 있는 멀티플렉스에서는 7편의 영화를, 60%의 쿼터제를 도입한다면 6편의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하나의 영화의 점유율을 제한하는 정책보다 다양한 영화의 상영이 가능할 수 있으며, 시장 내에 상영되는 영화에게 현재보다는 다양한 상영의 기회가 제공될 것입니다.

하지만, 상영영화쿼터제는 보기에 따라서 스크린 점유율 제한 보다 더욱 강력한 규제 정책으로 시장의 환영을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하더군요. 상영영화 쿼터제를 주장했던 지난 여름 너무 강력한 규제책이란 면박을 좀 받았습니다. 흐흐. 뭐 독립영화 하는 사람이 영화 산업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도 별로라 더 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상영 영화 쿼터제가 입안된다면 보다 다양한 영화의 상영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은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스크린 점유율 제한이든, 상영 영화 쿼터제이든 이런 정책들로만 현재의 왜곡된 상영 시장을 바로 잡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교차 상영'이라는 부적절한 상영 시간 배치 때문입니다. 10개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가 10개의 영화를 상영하긴 하나 소수의 영화에게 상영 스크린이 집중되고 몇 편의 영화에겐 좌석수가 적은 한 개 정도의 스크린에서 1~2회의, 그것도 관람이 용이하지 않은 시간에만 상영 기회를 제공하는 교차 상영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상영은 하나 관람이 쉽지 않아 집니다.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유연화된 상영 시간 배치', 혹은 '영화 상영의 유연화 현상'이라고 부를 만한 이 상영 방식이 고수된다면 다양한 영화를 상영함에도 불구하고 상영되는 영화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불공정한 양태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교차 상영은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영화의 상영이 필요한 영화제나, 시네마테크, 아트하우스 극장 등에서 다양한 영화의 상영을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되어야할 상영 시간 배치 방식이지 일부 영화의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선택되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교차 상영'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을 때에야 상영 영화의 다양성, 관객들의 다양한 영화 관람이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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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스크린쿼터제의 축소 조정을 전제로 마이너리티쿼터 신설 등의 정책 방향을 언론에 흘리면서 스크린쿼터제와 영화문화 다양성의 관계 등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 속의 영화문화의 다양성은 실질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하려는 입장과 스크린쿼터제의 무용성의 근거로 전유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 주장을 살펴보면 그저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고 보장되어야 한다는 립서비스일 뿐이거나, 실체도 불분명한 마이너리티쿼터제가 필요하다는 식의 제기에 멈춰버릴 뿐, 실질적인 다양성 확보 방안에 대한 진지한 접근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단언컨대 영화문화 다양성은 스크린쿼터제의 축소나 마이너리티쿼터제의 신설로 확대될 수 없다. 영화문화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몇 가지 정책에 대한 근시안적인 접근보다는 보다 근본적이고, 확대된 시선과 접근이 필요하다. 영화의 문화 다양성, 스크린쿼터제 등은 이러한 전제 속에서 다시 사고되어야 하며, 그 좌표가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 속에서 보다 다양한 정책들이 실행될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문화 다양성의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

정부나 정당이 실질적인 문화 다양성 정책을 고민한다면, 현재 산업 진흥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 진흥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근거해서는 비시장적이고 반상업적인 영화 문화의 자리를 구체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산업과 시장이 확대에 맞춰 문화 민주주의에 기반한 문화적 공공 영역을 확대할 때에야 비로소 문화 다양성의 자리는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등 독립영화 진영은 그간 정부의 영상정책이 문화 공공성에 기반한 정책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해 왔다. 독립영화 전용관의 설립, 영상미디어센터 및 시네마테크의 전국적인 설립 확대 등 공공적인 영상문화정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되고 강력하게 추진될 때, 산업과 시장의 조건 안에서는 보장되기 어려운 영화 문화의 다양성을 획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립영화 전용관이나 영상미디어센터 등 독립영화 지원 정책의 확대만으로 영화문화의 다양성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보장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문화 공공성의 원칙이 정부기구만이 인식해야할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한국 영화 산업 역시 문화 공공성의 원칙을 깊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산업에 의해 생산된 영화가 사회적,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가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접근이 있을 때,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한 어처구니없는 영화들의 생산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며, 보호받아야 하고 진흥되어야할 문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스크린쿼터제의 유지 주장 역시 지금까지의 유지근거라고 할 수 있을 한국영화 산업 보호와 진흥의 원칙만이 아니라 문화 공공성의 원칙 속에서 재위치 지우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에야 영화 산업만을 위한 스크린쿼터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 다양성의 획득은 말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는 어려운 과제이다. 정부와 영화계는 스크린쿼터의 축소 여부에 대한 지엽적인 싸움을 위해 문화 다양성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전면적이고 구체적인 문화 다양성 정책들과 과제들을 생산하고 추진해 가야할 것이다. 그 안에서 독립영화 전용관을 비롯한 독립영화 진흥 정책을 더욱 활발히 펼쳐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성 : 2004.09.21.
지금은 없어진 [COREA]라는 잡지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 늘 하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아마 마감에 맞추지 못해 싣지는 못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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