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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아버지의 깃발>.

[씨네21] 590호에 실린 허문영 평론가의 글 "마지막 카우보이, 위대한 전쟁영화를 만들다"에 이 영화에 대한 더할나위 없는 내용들이 씌여져 있으므로, 영화에 대한 별도의 코멘터리는 달지 않겠다. (아니 못달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덧붙이자면, 허문영은 위 글에서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를 반전영화라고 말하는 건 이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트우드의 주인공들은 폭력적인 세상을 폭력으로 버텨왔지만 그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어딘가에 내던져졌고, 그곳에서 살아내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육체적으로 버틴다. 이스트우드가 한 인터뷰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의 폭력적인 보안관 빌에 대해 한 말을 빌리면 그의 영화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이야기다."라고 쓰고 있지만, 2007년 3월 오늘 한국에서 <아버지의 깃발>에서 다루어 지는 이야기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이야기"로만 읽히진 않는다.

지난 2월 27일 오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앞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에 의해 윤장호 씨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애국을 위해 한 청년이 자신을 희생한 사건이기 이전에 우리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로 명분없는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이 사건을 통해 과연 명분없는 파병이 정당한지,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한국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3월 3일자 뉴스에 따르면 고 윤장호 씨의 분향소를 찾은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윤장호씨가 나라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라고 하고, 김장수 국방부장관은 철군 관련 질문에 대해 "윤장호씨가 과연 파병 철군을 원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고 한다.

한 청년의 죽음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짚어보지 않은채 세계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호도하거나, 파병 철군과 연관시키는 것을 회피하거나, 한국군의 국외 주둔지에 대한 안전 문제에 신경을 더 기울여야 한다는 식으로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는 것은 윤씨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는 방법이 아니다. 윤씨의 죽음을 숭고한 희생으로만 포장하면서, '테러리스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테러에 절대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진정한 애도가 아니다. 윤씨의 죽음을 통해 전쟁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깨닫고 무의미한 전쟁 참여를 멈추는 것, 그것이 윤씨의 죽음에 대한 진정한 애도가 될 것이다.

하나만 더 덧붙이지면, 비록 <아버지의 깃발>이 만족할만한 흥행을 기록하지 못했더라도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가 한국에서 개봉되길 바란다.


아버지의 깃발 Flags Of Our Fathers

제작년도 2006 / 상영시간 131분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 각본 폴 해기스 외 / 출연 라이언 필립, 제시 브레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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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스 게이트가 제작한 <쏘우> 시리즈는 1990년대 중반 디멘션필름스의 <스크림> 쓰릴로지 이후,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은 호러영화 시리즈라고 불릴만 합니다.

<쏘우>의 시작은 아주 미미했습니다. 제임스 완 감독의 9분짜리 단편영화 <쏘우>의 장편 버전이라 할만한 <쏘우>(2004)는 약 12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초저예산의 호러영화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박스 오피스에서 개봉 첫 주에만 제작비의 10배를 넘는 1,800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최종적으로 5,500만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벌어들인 흥행작이 되었죠. 그리고 바로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한 독립영화 배급사 라이온스 게이트는 후속편 제작에 착수하게 됩니다.

2005년에 공개된 <쏘우 2>는 400만 달러라는 전편보다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었고, 개봉 첫주에만 3,1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최종적으로 미국에서 8,700만 달러라는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2006년에 (1편의 제작비의 10배고, 2편의 제작비의 4배인) 1,200만 달러가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쏘우 3>가 개봉됩니다. 예상대로 첫주에만 3,3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고 현재까지 8,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급기야 내년 여름에는 <쏘우>의 네번째 시리즈가 개봉된다고 합니다.

<쏘우>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저예산 장르영화였고, 그 참신한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우려내며 2000년대를 대표하는 호러영화 시리즈로 자리잡았습니다. 아마도 독립영화 배급사 라이온스게이트에게는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블루칩으로 인식되고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쏘우> 시리즈가 흔쾌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직쏘에 의한 공포교훈극이라고 할만한 이 시리즈는 사실 첫번째 영화에서 모든 이야기들이 마무리 됩니다. 2편에서 '왜 직쏘가 이런 일들을 꾸미고 진행하는가'라는 이야기를 게임의 시작에는 참여하진 않았지만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 (외부로) 엮어내고, 3편에서는 직쏘의 게임을 게임을 만들어내는 내부로 끌어들여 이야기를 지속합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확장된 외부, 그리고 다시 내부로 향하며 나름대로 시리즈로서 구성되지만 남는 건 직쏘의 교훈이 중언부언 늘어지는 것, 그리고 직소의 게임과 무관하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 밖엔 없어 보입니다. 시리즈의 처음에는 영화의 설정과 충격적인 신체훼손 장면들에 직쏘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고개를 끄떡일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시리즈의 반복은 설정과 신체훼손, 그리고 직소의 의도를 더 이상 공감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시리즈 3편은 <쏘우> 시리즈를 그저 시덥잖지만 젠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는 듯한 척 하지만 제스추어에 멈출 뿐인 유치뽕 영화로 만들어 버립니다.

 2007년 개봉으로 예정된 <쏘우>의 네번째 시리즈는 <쏘우>를 시작하고 3편까지 이어온 제임스 완과 리 완넬이 떠난 채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IMDb에 의하면 4번째 이야기는 <Feast>(2005)의 각본을 담당한 마르쿠스 던스탠과 패트릭 멜튼 등에 의해 쓰여지고 있다고 하네요. 직쏘의 죽음 이후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고, <쏘우> 시리즈가 2000년대의 <13일의 금요일>이 되어버릴까봐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제이슨을 되살려낸 <13일의 금요일>을 재현하지만 않았으면 합니다. 

<쏘우>를 탄생 시킨 두 영웅 제임스 완과 리 완넬은 2007년 <Death Sentence>라는 영화로 돌아온다고 하네요. <쏘우 4>보다는 차라리 <Death Sentence>를 기대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쏘우 3 (Saw Ⅲ)

제작년도 : 2006 / 상영시간 : 113분, 108분
감독 : 데런 린 보우즈만 / 각본 : 제임스 완, 리 완넬 / 출연 : 토빈 벨, 샤니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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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에서 상영되었던 영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는 20명의 감독이 참여한 공동 프로젝트로만 인식되었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는17명의 독립영화감독과 미디어 활동가가 함께 한 독립영화 프로젝트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가 와이드앵글부문에 초청되었는데, '설마 이 작품 만큼 감독들이 많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있겠어'라던 생각을 꺾은 프로젝트로 각인되어 있었다.

참고로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많은 감독이 함께 참여한 프로젝트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와 <사랑해, 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역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되었던 <도쿄 루프 Tokyo Loop>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이 있었다.

<도쿄 루프>는 최초의 애니메이션인 J.S. 블랙스톤의 [재미있는 얼굴](1906)의 제작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다. 야마무라 고지, 구리 요지, 이와이 도시오 등 일본 애니메이션과 비디오아트를 대표하는 작가 16명이 도쿄를 주제로 한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애니메이션/미디어아트 작품을 제작한 작품.

<도쿄 루프> 홈페이지 : http://www.imageforum.co.jp/tokyoloop/

파리에 대한 18개의 이야기.

<사랑해, 파리>는 제목 그대로 파리에서 멀어지는 18개의 사랑이야기를 오롯히 담고 있다. 참여한 감독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고, '사랑의 도시, 파리'가 입체적으로 구성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돋보였던 단편은 코엔 형제가 만든 <튈트리역>와 스와 노부히로의 <빅토아르 광장>, 그리고 빈센조 나탈리의 <마들렌느 구역>, 톰 티크베어의 <생드니 외곽>, 그리고 실벵 쇼메의 <에펠 탑>. 하나하나 쓰다보니 너무 많아졌다. 뭐 나머지 단편들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반면 좀 떨어지는 작품.
먼저 크리스토퍼 도일의 <차이나 타운>. 이 작품은 정말 왜 함께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의 <몽소 공원>. 이 단편은 더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너무 아쉽다.
리처드 라그라베네즈의 <피갈 거리>. 대충 구색은 맞지만 뭐랄까 인상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웨스 크레이븐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보다 유머러스한 작품이 될 수 있었는데 미치지 못했다.

재미있는 기획이고, 흥미로운 작품이긴 하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난 한가지 의문.

정말 파리는 살만한, 사랑이 넘치는 도시일까? 꼭 그렇지 만은 않을텐데.
파리 역시 계급갈등과 인종갈등이 위험수준에 도달한 도시일텐데 너무 외피만 그럴싸한 건 아닌가.
이런 면에서 월터 살레스와 다니엘라 토마스의 <16구역>은 인상적이었다.

서울을 주제로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술취한 서울>은 어떨까나.
서울의 밤거리는 술.술.술. 이니까. 내가 그래서 그렇게 느끼는 건가..

<사랑해, 파리> Paris, Je T'Aime

제작년도 : 2006 / 상영시간 :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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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침몰 : 2007.0201.

2007/02/02 12:04
일본산 블록버스터 영화 <일본침몰>.

최근 2~3년 내에 두드러지는 일본영화의 변화 중 하나는 큰 예산의 이벤트 무비를 자주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큰 예산의 영화는 가끔씩 제작되는 애니메이션 영화였을 뿐, 실사(라이브액션)영화의 경우 큰 예산의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민영 텔레비전 방송사와 복합 미디어 기업으로 변화를 꾀하는 출판사들이 영화산업에 진출하면서 기존 메이저 스튜디오의 제작이 아닌 다른 방식의 큰 예산 영화 제작이 일련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듯 하다.

<일본침몰>은 바로 이런 거대 예산 이벤트 무비 제작 흐름의 2006년 결과물이다. 일본이 침몰한다는 가상의 미래 역사를 다루는 만큼 영화 제작에는 많은 특수효과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컴퓨터 그래픽 등 특수효과를 전면에 채용하기 위해서 예산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런 큰 예산의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제작비 마련이 가능할 정도의 일정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물론 거대예산의 블록버스터 영화 / 이벤트 영화가 시장을 부양시키는 효과도 있을 수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은 영화 제작 자본의 시장 규모 확대에 대한 욕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거대 예산영화에 대한 일정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지속될 수 있다는 혹은 지속할 수 있고 더 커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침몰>을 비롯, 몇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제작 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일련의 욕망과 기대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망과 기대감만으로 거대 예산이 회수되지는 않는 법. 거대 예산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상영 스크린의 확보와 상영 기간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 스크린과 기간의 확보를 위해 영화 산업 자본이 선택하는 (세상 어느 영화 자본과 마찬가지로) 독과점적 질서 안에서의 독점적 영업 행위로 드러난다.

일본에서는 시네콘이라 부르는 멀티플렉스의 확대와 복합 미디어 자본의 시장 결합이 최근 영화산업의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일본 최대 메이저 스튜디오인 토호(東寶, TOHO Co., Ltd)와 TBS 도쿄방송의 결합이 대표적인데, <일본침몰>을 비롯,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NANA> 등의 작품 역시 토호와 TBS가 함께 한 작품이다.

이런 결합은 메이저 영화사와 방송사의 일대일결합이라기 보다는 제작위원회 구성이라는 방식으로 구체화되는데, 방송사는 예능프로그램 등을 활용한 프로모션을, 영화사는 배급과 선전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많은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극장업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배급에서 상영까지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토호와 TBS의 결합의 경우 토호가 시네마콤플렉스 체인인 TOHO CINEMAS(32개 사이트, 307개 스크린)를 자회사로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TOHO CINEMAS 외에도 16개 사이트, 127개 스크린의 멀티플렉스를 경영하고 있고, 시네마 콤플렉스 이외의 영화관도 운영하고 있는 일본 최대의 상영업자이기 때문에 상영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의 작품을 공개함에 있어 메이져 스튜디오의 수직계열화와 거대미디어회사의 수평적 결합을 이뤄냄으로써 시장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가게 되는 셈인데, 일본의 거대 예산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이런 결합을 바탕으로 상영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형태로 추진된다고 한다.
 
이런 양태는 일본산 블록버스터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일본 상영 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현재 일본의 상영 시장 역시 스크린독과점이라고 부를만한 현상들이 나타나며, 다양한 영화의 상영기회가 축소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정작 영화이야기는 안하고, <일본침몰>이 제작될 수 있는 일본영화 산업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하게 된 셈인데, 사실 영화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비슷한 소재라고 할만한 미국산 블록버스터 영화들 <딥임팩트>, <아마겟돈>, <투모로우>와 비교해 보자면, 피해를 당하는 시민들의 모습, 그리고 피해를 줄이려는 정부기관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 눈에 띠지만, 그런 특성을 제외하면 느슨한 플롯의 연결, 황당한 설정과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가 거슬리는 작품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에 대한 일본 내보다는 해외 영화 세일즈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일본침몰>이라는 제목 하나로 필름 마켓에서 엄청난 관심을 이끌어 내었다는 후문. 아마 세계 각국에게는 일본열도가 침몰한다는 그 컨셉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아마 이 영화가 한국에서 일정하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이 침몰한다는 영화의 기본적 설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부연하자면, <일본침몰>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와 달리 영화의 주인공의 죽음이 등장하는데, 이런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경향은 한국산 블록버스터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 일본산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다른 일본산 블록버스터에서도 이런 경향이 존재한다면 로맨스를 결합하고 (가설에 불과하지만) 주인공의 장렬한 최후로 마무리하는 스토리라인이 미국과는 다른 아시아 블록버스터 영화의 관객 소구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확인하려면 다른 일본산 블록버스터영화들을 볼 필요가 있겠다.


일본침몰 (日本沈沒, Sinking of Japan)

제작년도 : 2006 / 상영시간 : 133분
감독 : 하구치 신지 / 출연 : 토요카와 에츠시, 쿠사나기 츠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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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日本以外全部沈没

    Tracked from ひょんが描くJapan Life 2007/08/23 12:37 Delete

    「日本以外全部沈没」という日本映画を昨夜みました。ん。。なんと言うか、映画の世...

도그마는 현재 영화의 어떤 경향에 도전한다.

1995년 3월 13일 화요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도그마 95라는 종교적 이름의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이 선언문과 함께 발표된 순결의 서약은 '감독의 이름은 크레딧에 오르지 않는다, 촬영은 반드시 로케이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등의 10가지 계명을 포함하고 있다. 이 선언을 주창한 사람은 <범죄의 요소>, <유로파> 등으로 깐느의 기술공헌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스타일리스트였던 라스 폰 트리에, 그와 함께 토마스 빈터베르그, 크리스찬 레브링, 소렌 크라이 야콥슨 이렇게 네명의 감독이 이선언에 동참하였다.

라스 폰 트리에 자신의 이전 필모그라피를 부정하는 듯한 이 선언문이 동참을 바라며 각국의 '영화 작가'들에게 보내졌을 때, 그들은 이 원칙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그리고 원칙대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를 의심하였다. 더구나 도그마95는 '현대 영화의 바다고 강물'이라는 프랑스 누벨 바그를 '해변으로 쓸려버릴 정도의 잔물결이 되어 허접 쓰레기 오물로 변해 버렸음'을 선언하며 정면으로 비판하고, 감독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리지 않는다는 상징으로 누벨 바그의 기초이론이었던 '작가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도그마 집단은 "나는 감독으로서 개인의 취향을 자제할 것을 맹세하며 더 이상 작가/아티스트가 아님"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도그마 95의 형식을 지배하는 순결의 서약은 누벨바그 영화 양식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누벨바그 세대들의 영화는 기승전결 식의 양식화된 구성에서 벗어나려 했고, 저항과 변화를 전제로 기존의 문화 관습과 패러다임을 탈피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영화 형식에 있어서도 현장감 넘치는 핸드헬드촬영, 휴대용 동시녹음기의 사용, 자연광만으로 촬영 가능한 고감도 필름의 사용과 줌 랜즈의 사용, 비전문 배우의 기용, 그리고 영화 속의 문학, 사상, 예술서 등의 직접인용, 자막 사용, 화면 밖 나레이터 등장으로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누벨 바그와 도그마95는 영화 형식적으로는 차이가 있기보다는 오히려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이다. 도그마 집단은 누벨 바그의 어떤 부분을 비판하였던 것일까?

누벨바그와 도그마95가 갈라서는 지점은 작가에 대한 것이다.


누벨바그, 1960년대는 이제 너무나 충분하다.

1959년 장 뤽 고다르의 <네멋대로 해라>가 등장하기 이전, 혹은 1952년 프랑수아 트뤼포가 <까이에 뒤 씨네마>에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을 발표하기 이전 프랑스 영화는 "영화적으로 예술적"이지 못했다. 트뤼포의 표현에 의하면 기존의 프랑스 영화는 문학적인 기질을 지닌 시나리오작가들의 취향에 휘둘리고 있었으며, 누가 감독을 하더라도 그것은 시나리오 작가의 영화이지 감독의 영화가 아니었다. 이들의 영화는 고상한 듯 보이지만 시각적으로 진부한 '질의 전통'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이런 문학적인 '질의 전통'의 영화가 된 이유는 토키의 발명이었다. 사운드의 도입은 무성영화 시대 이후 아방가르드 영화들이 개발한 풍부한 시각적 표현력을 훼손시켰지만 19세기 유럽의 리얼리즘 소설이 정교한 이음매 없는 핍진성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였다.

내러티브와 영화의 결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내러티브 영화의 우위는 유럽에서가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먼저 활성화되었다. 유럽의 영화가  이 1차대 전에 의해 정체되고 있을 무렵 미국은 내러티브 영화가 가진 대중 오락물로서의 유용성에 주목하였다.

1차 대전 이후 미국 영화의 상업적 우위와 사운드의 도입은 할리우드적 리얼리즘 영화의 우위를 가져왔고 유럽의 모더니스트들에게 이미지의 예술로 비춰졌던 영화는 서사물로서의 리얼리즘, 미국의 장르영화 등은 모두 19세기 유럽 리얼리즘 소설이 확립한 고전적 내러티브에 따라 시공간을 조직하고 있었다.

2차대전이 종결된 이후 유럽의 영화산업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고,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세계지배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누벨 바그 세대들이 영화를 보았던 40년대 후반의 유럽은 미국영화가 넘쳐 났고,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영화는 미국의 소비 자본주의의 천박한 문화적 상징이 되었다. 영화는 더 이상 예술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영화가 기존 예술의 예술을 극복하고 새로운 예술이 될 수 있으리라는 프랑스 아방가르드 전통과 독일 신칸트학파의 기대가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주장은,'창조성, 천재성, 영원한 가치와 비밀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설정하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예술개념에 기대게 된다. 1948년 프랑스의 영화감독 알렉상드로 아스트뤽은 <카메라 만년필>이라는 글에서 '영화의 스타일은 영화의 소재와 그 소재를 수용하는 영화작가의 주관적인 태도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며 영화작가는 소설가와 같은 기능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영화작가에게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이 주장은 트뤼포의「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글에 의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트뤼포를 위시한 <까이에 뒤 씨네마>의 영화동료들은 '작가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영화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작가주의자들은 작가의 개념을 미장센의 개념과 깊게 연결시킴으로써 발전시키는데, 그것은 트뤼포를 위시한 젊은 작가주의자들이 30 - 40 연대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하였던 것에서 기인한다. 2차대전 당시 상영 금지되었던 미국 영화들이 갑자기 프랑스 극장을 점령하게 되고, 어린 시절을 알프레드 히치콕, 하워드 혹스, 존 포드 등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지낸 그들은 단순한 오락물로 취급받았던 이들의 영화에서 스튜디오 시스템 아래 만들어진 이들 영화의 내용이 아닌, 공통적인 스타일에서 어떤 창조적인 정신을 발견한다. 작가주의자들은 영화의 감독들에게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려고 했고, 내용이 아닌 씬의 구성/미장센에 드러나는 스타일에서 감독의 개성을 찾아내려 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은 대중 오락물로 전락한 영화에 천재의 창조성이란 낭만주의 작가개념을 부여하여 영화에 아우라의 광채를 덧씌움으로써 영화를 예술로 승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트뤼포에게 작가는 전체적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한다기보다 어떤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부패한 사회 내부에서 인간적인 가치의 낙관적인 측면을 표현할 줄 안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 속의 인물들은 그 자신의 정신적인 노력으로 세속적인 상태를 벗어난다. 트뤼포는 작가주의야 말로 영원한 진리로의 회귀이고 낭만주의라는 프랑스의 고전적인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예술에 대한 낭만주의적 관념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 트뤼포의 작가개념은 예술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의문시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예술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던 누벨바그 이전 아방가르드의 예술관에 비해서도 퇴행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이 작가주의는 미국의 평론가 앤드류 새리스에 의해 좋은 영화, 혹은 위대한 감독이 만든 정전과 그렇지 않은 것들로 영화를 재단하는 하나의 이론체계로 격상되었다.

새리스는 미국영화만을 '유일하게 좋은 영화'로 끌어올린다는 민족주의적이고 쇼비니즘적 목적으로 작가주의를 이용했고, 급기야 주류에 대한 문제제기로 등장했던 작가주의는 또 하나의 주류가 되어 영화의 예술적인 완성도를 '작가'라는 신비한 기준으로 수직계열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작가주의는 어떤 하나의 감독을 '작가'로 인정하느냐 마느냐하는 문제가 평가자의 주관적 기호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뛰어난 작가의 그저그런 작품을 평범한 감독의 뛰어난 영화보다 높이 평가해야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1980년대 이후 구조주의/포스트구조주의와 같은 반인간주의적인 이론이 등장하여 '주체로서의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자 작가의 주체적 창조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작가주의는 그 기반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작가주의가 이론적으로 유효한 비평방법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주의자들이 근대 예술 개념의 본질을 짚어냈기 때문이다. 예술의 개념이 불안정하고, 보편적 예술의 기준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예술을 예술로 재생산하는 것은 자율적 체계로서 근대 예술 제도이다. 근대적 예술제도는 예술의 기준으로 '창조성, 천재성, 영원한 가치와 비밀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설정하게 되는데, 이 제도 속에서 작품 이면에 존재하는 역사성이나 현실성은 지워져 버리고 위대한 작가와 그의 작품만이 초역사적으로 남게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이며, 근대 예술제도는 작가에게 종교적인 후광을 가진 성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작가주의 미학 속에서 영화는, 발터 벤야민이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영화가 근대 예술의 특징인 아우라가 부재하고 그로 인하여 교양계층의 엘리트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중의 예술로서 근대 예술의 신비적 측면을 탈신비화할 것'이라는 기대와, 레닌이 '모든 예술 중에서 영화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영화가 부르주아의 예술과는 다른, 새롭게 지배계급이 된 프로레탈리아의 예술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며, 다시 부르주아의 예술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아방가르드라는 개념은 더욱 중요해진다.

영화의 초창기에는 미래의 예술로서 다양한 기대가 존재한다. 근대 예술의 개념이 도전하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영화 매체에서 낡고 속물화된 기존 예술을 대체할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보았다. 러시아 혁명 직후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를 본 레닌은 영화에서 부르주아 예술을 대신한 프롤레탈리아트 예술의 가능성을 보았고, 발터 벤야민의 주장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었다.

아방가르드는 기존 예술의 본질을 구성하는 형식과 개념을 의심하고 해체한다. 즉, 아방가르드는 근대 예술 제도가 확립해 놓은 자율적 영역으로서의 예술을 의심하고 새로운 예술 수단과 새로운 표현 형식을 찾아내어 기존 예술의 관념을 내파하려 한다.

20세기초 아방가르드 운동은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서의 영화가 가진 혁신적 가능성에 주목하였고,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독일의 표현주의 그리고 20년대 소비에트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정점을 이루었다. 그러나 스탈린 체제 이후 소비에트 영화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대체되고, 앞서 언급했듯 토키의 발명과 불안한 정치적 상황은 아방가르드 운동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아방가르드는 작가주의자에게 자리를 내어 주게 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진 지 100년인 1995년 '도그마 95'는 다시 아방가르드를 불러 세운다. 부르주아가 되어 버린 누벨 바그 영화 미학과 테크놀로지의 태풍이 몰아치는 오늘날 영화들 앞에서 그들은 화장술을 벗어버리고 환상이 아닌 영화를 만들 것을 서약한다. 도그마 95와 함께 발표된 순결의 서약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규칙들로 영화 원형의 모습들을 복원하려 한다. 도그마 95는 영화의 근대 예술적 지위를 해체하는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무장해 영화 2세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

★ DOGME 95 The Official Web Site http://www.dogme95.dk/


작성 : 1998년 여름 어느날.
"Dogma95" 의 #1 <셀레브레이션>, #2 <백치들>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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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만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이천년>(2000)은 흔히 16mm 에로영화라 불리는 AV(Adult Video)지만 어딘가 기존에 봐왔던 AV영화와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기존의 상업영화에 비춰서도 떨어지지 않는 각본과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감각적인 촬영과 리듬감 있는 편집은 <이천년>이 그저 단순히 일회적인 성욕의 배출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들과는 다른 자리에 위치하게 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기존의 AV영화와 차별화되는 곳은 단순히 그런 이유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천년>이 다른 영화가 된 것은 영화가 다루는 인물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영화 속의 인물들이 말하는 대사 속의 단어들은 생소하게 들리지만 그 단어들은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생생한 것들이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작은 부분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대사 처리의 변화가 아니라 기존의 AV영화가 인물을 피상적으로 다루어왔다면 <이천년>은 인물들의 삶을 능동적으로 다루려고 하고 있다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었다.

봉만대 감독의 인물들에 대한 이런 접근은 그의 영화들이 다루는 인물들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봉만대 감독의 일련의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는 낙오자들이다. 그들은 백수이고, 창녀이며, 가스배달부이며, 짱깨배달부이고, 만화방을 지켜주고 잠을 자고, 가출소녀이며, 재수생, 돈없는 일본 유학생이다. 그들은 인정받지 못하지만 자신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 쉽게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며, 신문배달과 비디오가게 종업원을 하고, 가진 것이 몸뚱아리뿐이기 때문에 몸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을 나누고, 친구의 생일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소매치기를 하고, 성공하고자 가출해서 상경하고, 돈을 벌기 위해 포르노영화를 찍으며, 싸우며, 우정을 나눈다. 이런 인물들이 서로를 간절히 원해서 사랑을 나누는 그 순간만큼은 누추하지만 아름답고, 화려하진 않지만 섹시하다.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갈등하는 딴따라들의 이야기를 그린 <딴따라>(2001)에 나오는 자취방 섹스씬은 매우 아름다운데, 그것은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술집에서 연주를 하다 손님들과 싸우고 얻어터진 후 서로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확인한 다음 서로를 위로하는 감정선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2001년 작품 <아파바>는 A급 비디오배급사인 새롬엔터테인먼트가 제작비를 투자하고 쨈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작품으로 2001년 최고의 AV영화로 선정되기도 한 봉만대 감독의 대표작이다. 영화는 봉만대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기지촌으로 유명한 동두천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무엇하나 가지지 못한 이들, 아니 제대로 가진 것도 없는데 그 가진 것 마저 뺏기고 잃어버리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격렬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주인공인 바다는 자신들을 버리고 미군과 어디론가 떠나버린 엄마의 행방을 찾는다. 반쪽뿐인 가족 안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바다를 가스배달부인 파도는 사랑한다. 사실 의정부와 철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동두천엔 바다가 없다. 동두천에서 바다를 보려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바다와 모래는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잃고만 살아오다 가까스로 최소한의 안정적 터전을 마련했기 때문이며, 그것만큼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복오빠 찍새가 돌아오면서 이 최소한의 터전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며 영화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다. 영화 이야기는 단순히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중간중간 파도의 랩(Rap)이 첨가되는데, 이 랩은 영화의 메시지를 강화한다. 1970년대 미국의 할렘가에서 시작된 랩은 낙오된 흑인들의 불만과 정서를 담아낸 것이었는데, 파도의 랩 역시 낙오자 취급받는 이들의 분노를 담고 있다. 파도의 랩은 바다의 삶과 죽음에, 낙오된 이들에, 동두천에 헌사하는 진혼곡이기도 하다.

봉만대 감독의 작품 중 <디지털 비디오>(2001)는 매우 주목할만하다. 16mm 가 아니라 “디지털 비디오”로 만들어지는 영화임을 선언하는 듯한 제목은 기존의 AV영화에 대한 선입관은 물론 현재 AV영화계를 초점으로 삼으며 진행된다. 벌거벗은 채 자위행위를 하는 비디오가게 점원남자와 AV영화 여배우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현재 한국의 AV영화계에 관한 비판이 노골적으로 전개된다. 여배우와 제작자를 중심으로 배우와 제작자의 종속관계를 그려내고 있음은 물론 비디오가게를 무대로 하여 AV영화가 소비되고 있는 상황까지를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목적없이 성적관계만을 담아내려는 일부영화들, 적은 제작비와 짧은 제작기간으로 비디오시장의 불황을 타고 넘어서려는 제작사의 이야기은 물론 섹스횟수와 강도, 음모노출의 여부 등 표면적인 것만 쫓는 에로-매니아들, AV영화를 제대로 취급하지 않으며 반품을 전제로 거래하는 비디오가게의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렇다고 영화가 상황에 대한 비판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을 나와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영역을 지켜나가는 남자의 모습에는 AV영화감독으로서 감독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하고, 화가인 비디오가게 종업원과 AV여배우의 사랑을 통해 희망적 미래가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봉만대 감독은 많은 작품에서 스스로 기획, 연출, 각본, 촬영을 담당하며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이야기 내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꿈꾸는 것이다. AV영화라는 시스템 안에서 2년 동안 15편의 영화들을 만들어낸 감독이지만 어쩌면 그의 이야기들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봉만대 감독의 영화가 미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AV영화에 대한 오도된 선입관이 강하게 남아있어 그의 영화들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봉만대

1970년생. 94년 <휘파람을 부는 여자>(신우철 감독)의 조감독을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언더그라운드>(1996, 강용규 감독), <킬링게임>(1996, 강용규 감독) 등의 작품에 조감독으로 참여하였으며, <영상으로 본 팔만대장경>(1996)의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96년 CF 제작사 및 영화사인 ㈜두퍼스를 창립하고 008 온세통신 기업홍보, 목우촌 햄, 박카스, 오리온 칙촉, LG 기업PR, 한석규편 맥심 등 다수의 광고를 제작했다. 이후 99년 일본에서 로케이션 촬영한 장편영화 <도쿄 섹스피아>를 연출하면서 영화계에 복귀했다. 자작 시나리오인 <핑크 펑크>를 개작해 연출한 두 번째 영화 <이천년>(2000)으로 AV영화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주목을 받았으며, 주요 연출작으로 <이천년>(2000), <연어>(2000), <디지털 비디오>(2001), <아파바>(2001), <모모>(2001) 등이 있으며 99년 이후 현재까지 15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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